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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Vocal2014.12.19 10:22



Recording Date: 1969
Label: PentaTone

1. Requiem - Kyrie
2. Dies irae - Tuba mirum
3. Quid sum miser
4. Rex tremendae
5. Quaerens me
6. Lacrimosa
7. Domine Jesu Christe
8. Hostias
9. Sanctus
10. Agnus Dei

Ronald Dowd - Tenor
Colin Davis - Conductor
London Symphony Orchestra & Chorus
Wandsworth School Boys' Choir

Posted by 멜팅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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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리랑

    오! 드디어!! 감사합니다~~~

    [네이버캐스트]
    "...베를리오즈는 자신이 꿈꾸던 음악을 실현해내기 위해 무슨 짓이든 다 했습니다. 고정관념이 없었던 그는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음향의 판타지를 실제 관현악곡에 옮겨놓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는 이런 식이었습니다. 전통적으로 팀파니나 큰북 등은 특별한 경우에만 사용되는 악기지만 전통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베를리오즈는 팀파니에도 음높이가 있으니 수십 대의 팀파니를 한꺼번에 연주하면 화음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습니다. 수십 대의 팀파니로 만든 화음이라니! 21세기가 된 지금도 감히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또 같은 제1바이올린 섹션이라도 그것을 몇 개의 성부로 더 세분화할 수 있는 것처럼 가장 낮은 음을 내는 더블베이스 섹션도 얼마든지 여러 성부로 분할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파격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탄생한 괴물 같은 작품이 바로 <레퀴엠> '죽은 자를 위한 미사'이었습니다.
    가톨릭 교육을 받긴 했으나 신앙이 없었던 베를리오즈에게 <레퀴엠> 같은 종교음악은 신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한 음악이라기보다는 세계의 종말과 부활에 대한 환상을 압도적인 음향으로 표출해낸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베를리오즈는 <레퀴엠>에서 죽음과 심판의 의미를 담아내기 위해 오케스트라의 사이즈를 어마어마하게 늘려 놓았습니다. 이 곡에서 그는 바이올린 연주자만도 당시에는 비교적 많은 수인 25명 이상이나 요구했고 비올라와 첼로도 20명 이상, 더블베이스도 최소한 1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악보에 명시했습니다. 목관악기는 플루트와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의 각 악기 군에 4대씩의 악기를 배치한 4관 편성에다 바순은 8대로 그 수를 대폭 늘리고, 호른은 무려 12대, 튜바는 4대나 요구했습니다.
    오늘날 웬만한 관현악곡에 튜바가 한 대 정도 필요한 것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편성이지요. 게다가 타악기는 8쌍의 팀파니를 연주할 주자 외에도 9명이 더 필요하고, 그리고 최소 200여 명으로 구성된 합창단과 테너 독창자까지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무대 위의 오케스트라와는 별도로 각각 8~10대 정도의 금관악기로 구성된 소규모 오케스트라 4개가 동서남북에 배치되어 입체적인 음향효과를 만들어냅니다.
    베를리오즈가 이토록 엄청난 편성의 작품을 작곡한 것은 당시 연주 장소의 여건이 갖추어졌던 탓도 있습니다. 1837년에 베를리오즈의 <레퀴엠>이 연주된 안바리드 예배당은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장소였고 베를리오즈의 혁신적인 악기 편성의 효과가 잘 나타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고 합니다. 1830년 7월 혁명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작곡된 이 대규모 레퀴엠 중에서도 제6곡 '눈물의 날'(Lacrymosa)에는 특히 4개의 금관 앙상블과 8쌍의 팀파니, 심벌즈 등이 활약하고 있어, 화려한 색채를 만들어냅니다...
    대규모 악기 편성과 상식을 깬 관현악법으로 다이내믹한 관현악곡을 만들어냈던 베를리오즈는 그 자신의 독특한 관현악 기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근대 악기법과 관현악법'이라는 저서에 담아 후대 음악가들에게 알렸습니다. 여러 나라말로 번역된 이 저서는 관현악법의 명저로 바그너를 비롯한 혁신적인 음악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베를리오즈가 워낙 기발한 관현악법을 구사한 탓에 그의 추종자들도 베를리오즈만큼 혁신적이고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이상적인 음향을 위해 고정관념을 철저히 배제했던 베를리오즈의 혁명적인 정신은 이후 관현악의 전성시대를 여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2014.12.19 18:20 [ ADDR : EDIT/ DEL : REPLY ]
  2. 김영무

    엄청난 음반이군요 정말.....~~ 우와...

    2014.12.19 20:21 [ ADDR : EDIT/ DEL : REPLY ]